마루틴 루터 (1483~1546)

 
<목차>
의인은 믿음으로
어린 루터
청년 루터
생사의 갈림길
죄인 루터
슈타우피츠
로마 순례
속죄의 계단에서
면죄부
폭풍은 몰려오고
싸움은 시작되다
에크 대 루터
분노의 필봉
보름스 의회
나의 생을 바치나이다

<국외의 다른 인물들>
- 어거스틴 (354 ~ 430)
- 존 위클리프 (1329 ~ 1384)
- 존 후스 (1369 ~ 1415)
- 마르틴 루터 (1483 ~ 1546)
- 울리히 츠빙글리 (1484 ~ 1531)
<국내의 다른 인물들>
- 권신찬

 
 
 
 

청년 루터

1498년 루터는 아이제나흐로 옮겨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비와 식비를 구하기가 여전히 어려웠기 때문에 마그데부르크에서처럼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돌면서 구걸을 했다. 깊고 맑은 눈동자를 지닌 사려깊은 사춘기 소년 루터는 이 시기에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우르슬라 고타 부인은 알게 되어 그 집에서 보호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다. 고타 부인은 트레포니우스 교장 선생님과 더불어 그의 성장기를 밝고 건전하게 이끌어준 분이었다.

1501년 7월, 루터는 아버지의 간절한 권유를 따라 명문인 에르푸르트 대학에 입학했다. 후일에 마테지우스는 그의 제자 루터에 대해 “참으로 활발하고 명랑한 젊음이였으며, 강의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는 즐겨 교사들에게 질문했고, 예절 바르게 대화했으며…강의가 없을 때에는 대학 도서관에서 보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라고 할 정도로 모범적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진지하고 긴 대화를 자주 즐겼으므로 친구들은 그를 ‘철학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명랑성과 우울, 이 두 상반된 기질은 항상 루터 속에 공존해 있었다. 그는 가끔 자기 주위를 벽처럼 둘러싸고 있는 죽음의 공포에 부딪혔는데 그 뒤에는 지워지지 않는 죄의식이 언제나 잇따랐다. 실상 이런 우수는 그 시대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산보를 하던 어느날, 허리에 늘 차고 다니던 칼이 빗나가 다리의 동맥이 끊어져 심한 출혈로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생명의 위험을 느끼자 죽음이 두려워 성모 마리아에게 호소했다. 침체된 마음으로 병상에 누운 루터는 병실 구석에 놓여 있는 낡은 류트를 발견하고 위로삼아 켜게 되었다. 차차 류트 켜기가 익숙해진 루터는 슬픔과 시련이 몰려올 때면, 마치 수금을 켰던 다윗처럼, 영혼을 달래기 위해 류트를 켜게 되었다.
대학 도서관 출입 또한 그의 즐거움이었다. 옛사람들의 고서들을 뒤적이며 신기한 세계를 찾으려는 루터의 손에 빨간 가죽표지를 한 두꺼운 책이 잡혔다.
“됐다!”
별안간 루터는 기뻐하며 미친듯이 소리질렀다. 그의 가슴에 라틴어로 된 성경이 안겨 있었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소원하던 책이었다. 당시 학교 교육이 라틴어 중심인데다 성경을 신성시하여 성경이 자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성경에 기록된 세세한 지혜의 말씀을 조금도 맛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찬송은 성직자들만 부르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평신도들은 고해성사 혹은 형식적 예배를 통해서나 하나님의 세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을 발견한 것이 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겠는가! 루터가 제일 먼저 읽은 사무엘상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 사무엘을 낳은 믿음의 어머니 한나의 이야기였다. 루터는 성경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마음의 양식을 즉시 가져다주는 데 깜짝 놀랐다. 성경이 이러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는 것을 목사나 사제중 어느 누구도 일깨워 준 적이 없었다. 그들이 외치는 것은 단지 하나님의 대리자 교황을 섬기라는 것뿐이었다. 루터의 머리 속에는 그들이 성경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루터는 ‘주께서 내게 성경을 주셨으니 소원을 이루게 하옵소서’라고 진심으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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