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틴 루터 (1483~1546)

 
<목차>
의인은 믿음으로
어린 루터
청년 루터
생사의 갈림길
죄인 루터
슈타우피츠
로마 순례
속죄의 계단에서
면죄부
폭풍은 몰려오고
싸움은 시작되다
에크 대 루터
분노의 필봉
보름스 의회
나의 생을 바치나이다

<국외의 다른 인물들>
- 어거스틴 (354 ~ 430)
- 존 위클리프 (1329 ~ 1384)
- 존 후스 (1369 ~ 1415)
- 마르틴 루터 (1483 ~ 1546)
- 울리히 츠빙글리 (1484 ~ 1531)
<국내의 다른 인물들>
- 권신찬

 
 
 
 

어린 루터

마르틴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 튜링겐 지방의 아이슬레벤에서 한스 루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골 광부로서 끈질기고 피곤을 모르는 근면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가족을 표현하여 광부 일을 하기에 알맞은 ‘땅딸막하고 거무튀튀한 피부를 가진 가족’이라고 했다. 가난했기 때문에 무척 검소,절약했으며 아이들을 엄격하게 훈육했다. 이것은 중세기의 특징중 하나로서 가정에서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실시되었다. 어린 시절 배가 고파 호두 한 알을 몰래 먹은 루터는 어머니에게 종아리에 피가 맺히도록 회초리로 맞았다. 또 오로지 라틴어만을 가리치던 소학교에서는 무슨 가르침이든지 체벌을 통해서만 이루려고 했다. 루터는 다섯 살부터 다녔던 만스텔트의 라틴어 학교를 ‘지옥과 연옥’, ‘악마의 학교’라 불렀다. 어느날 루터는 아침부터 열다섯 번이나 교장선생에게 맞았다고 했다. 어린 루터는 체벌 중심의 냉혹한 환경 속에서 두려움과 죄의식, 반항 그리고 끈기를 배우며 자랐다.

교회는 율법적으로 굳어져서 그리스도를 심판자로서 설명하였기 때문에 사랑이기보다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보다는 자비로운 성모 마리아를 흠모하는 예배가 성행하였다. 또한, 당대의 교권 횡포는 어린 루터의 눈에도 올바로 비춰지지 않았다. 가난한 상점의 값비싼 옷감을 일년치 축복의 값으로 강제 압수하는 사제의 비행을 목격한 어린 루터는 오래도록 그 일을 잊지 못했다.

1496년 봄 루터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형편이 조금 나아진 아버지는 그를 마그데부르크의 형제단 학교에 입학시켰다. 형제단 학교의 교장 프로포니우스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먼저 인사를 하는 보기드문 스승이었다. 훌륭한 스승의 사랑 덕분에 루터는 학교 생활의 새로운 기쁨을 맛보았다.

만스펠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루터에게, 광부들의 흉사에 붙어다니는 나쁜 귀신이나 마녀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루터는 광부의 수호성자 성 안나에게 내심 언제나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어느날 예배를 보던 중 루터는 교회에서 두 장의 그림을 보았다. 한 장은 어떤 왕이 죽어서 천국에 갈 양으로, 단식과 기도를 하느라고 흉악한 몰골을 한 채 거리를 헤매고 있는 모습이었다. 또 한 장의 그림은 제단 뒷벽에 그려진 것으로, 천국을 향해 배 한 척이 나아가는 광경이었다. 뱃머리에는 잘 차려입은 교황이 대주교와 감독을 거느리고 뱃전에는 사제와 목사가 노를 젓고 있었다. 일반 신도들은 배를 둘러싸고 죽을 힘을 대하 천국으로 가려고 헤엄치는가 하면, 지쳐서 물에 빠져들어 가는 사람의 모습도 보였다. 루터는 괴로움에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보통 사람들은 배로 천국을 가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몹시 불만스러웠다. 이러한 루터의 생각은 성직자들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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