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위클리프 (1329~1384)

 
<목차>
종교개혁의 선구자
교황에 대한 항거
종교개혁 주장
복음을 전할 토대 마련
위클리프의 재

<국외의 다른 인물들>
- 어거스틴 (354 ~ 430)
- 존 위클리프 (1329 ~ 1384)
- 존 후스 (1369 ~ 1415)
- 마르틴 루터 (1483 ~ 1546)
- 울리히 츠빙글리 (1484 ~ 1531)
<국내의 다른 인물들>
- 권신찬

 
 
 
 

복음을 전할 토대 마련

위클리프는 이제 영국에 순수한 복음을 전할 새로운 토대를 닦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작업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당시는 제롬이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벌게이트 성경이 가톨릭 교회 공인 성경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라틴어를 모르는 대부분의 영국 국민들은 성경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타락한 목회자들이 전해주는 것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교회의 법률은 오직 성경뿐이다”라는 위클리프의 주장을 감안해 보면 이 성경 영역 작업엔 교황의 절대적인 권위에 저항하려는 의도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라틴어 신약성경의 영역은 1378년에 시작된 일로서 약 150년 후에 윌리암 틴데일이 히브리어 성경을 영역하기로 결심하는데 큰 힘이 되기도 했다.

두 번째 작업으로, 그의 교훈을 몸소 실천하고자 하는 추종자들을 중심을 롤라드라는 선교단체를 조직하였다. 성직자는 성경을 전하지 않고 민중은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버려진 상태에 놓여 있었으므로 이 롤라드 전도운동은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롤라드는 사회 어디에서나 침투해 들어가 민중에게 복음의 참뜻을 전파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이들은 ‘청빈한 사제들’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초기의 발덴 파나 프란시스회 설교자들의 청빈한 생활을 사모하여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지팡이만을 짚고 둘씩 짝지어다녔기 때문이다. 이들은 위클리프의 제자답게 화체설과 면죄부 문제, 수도자들의 걸식 수도 행각 및 성직자 독신제 등을 비판하고 교황 제도가 비성경적이라고 규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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