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 (354~430)

 
<목차>
구원으로 이르게 한 그 복된 죄여!
놀기 좋아했던 소년
욕망으로 불탔던 청년시절
카르타고에서 마니교에 빠져
어거스틴의 성찰
신의 본성을 새로이 이해하며
자기반성 - 그 끝없는 고뇌
채찍으로 파견된 폰티키아누스
죄의 굴에서 벗어나 회심으로
세례 그리고 모니카의 죽음

<국외의 다른 인물들>
- 어거스틴 (354 ~ 430)
- 존 위클리프 (1329 ~ 1384)
- 존 후스 (1369 ~ 1415)
- 마르틴 루터 (1483 ~ 1546)
- 울리히 츠빙글리 (1484 ~ 1531)
<국내의 다른 인물들>
- 권신찬

 
 
 
 

신의 본성을 새로이 이해하며

창조주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의심이 걷히자 이번에는 악의 근원에 대한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이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은 자유의지 때문이고 그 행동의 결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은 신의 공정한 심판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을 명확히 이해하진 못했다. 그러다가 의지의 주체는 바로 자기 자신으로서 그곳에 죄악의 근원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를 만드는 이가 누구인가? 선 그 자체이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러면 선을 원치 않은 의지는 어디서 온 것일까? 누가 내 안에 악의 나무를 심어놓았을까. 만일 악마가 그랬다면 그 악마는 어디서 왔을까? 만일 선한 천사가 자신의 사악한 의지로 악마가 되었다면 그 사악한 의지는 또 어디서 왔단 말인가. 천사도 선하신 창조주께서 전부 만드신 것이 아닌가.'

  어거스틴은 그러한 생각으로 심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악의 세력에게 침해를 당한다는 오류의 심연으로는 빠져들지 않았다. 과거와 미래에 걸쳐서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존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만일 하나님의 본체가 타락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존재하지도 않은 악을 공연히 두려워할 때 그 두려움 자체가 바로 우리들의 마음을 찌르고 괴롭히는 악일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고민을 하면서 진리를 발견하기 전에 죽지 않기로 고대했다. 그러면서 라틴어로 번역된 플라톤 학파의 철학서적 읽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거기에서 그는 독생자는 하나님과 같이 영월불변한 존재로서 모든 영혼은 그의 충만하심을 힘입어 행복하게 된다는 구절들을 보게 되었다. 미약하게 나마 그는 이 책들을 통해 변하지 않는 빛을 보았다. 그 빛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보통의 빛이 아니었다. 그 빛은 지상의 어떤 빛과도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그것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시력이 없었다. 그는 멀고, 아주 높은 곳에서 자기를 감싸고 있는 분의 음성이 들리는 듯한 착각에 사로 잡혔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애굽기 3:14)

  그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악이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일 악이 실재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안에 좋은 것이 있지 하지 않았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악이란 의지의 왜곡으로 자신 안에 감추인 보배를 버리고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상태라고 여겼다.

  어거스틴은 점차 성경을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특히 사도 바울의 책을 자주 읽었다. 그리하여 시간이 갈수록 성경이야말로 하나님의 은총이 스며 있는 책임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본성을 새로이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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