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신 찬

 
<목차>
주일학교 학생으로
어머니와의 사별
대동아 전쟁 발발
타향 길
해방의 기쁜 소식
10. 1 사태
신학생이 되기까지
신학교 생활에서 느낀 환멸
목회의 시작
나는 위선자였다
대구 칠성교회로
새로운 계기가 된 집회
드디어 진리를 발견하다

<국외의 다른 인물들>
- 어거스틴 (354 ~ 430)
- 존 위클리프 (1329 ~ 1384)
- 존 후스 (1369 ~ 1415)
- 마르틴 루터 (1483 ~ 1546)
- 울리히 츠빙글리 (1484 ~ 1531)
<국내의 다른 인물들>
- 권신찬

 
 
 
 

대구 칠성교회로 (2)

그날 밤 예배당에 나가 혼자서 대성통곡을 했다. 평소에는 새벽마다 울고불고 기도했으나 그날은 밤중까지 얼마나 큰 소리로 울었던지 사찰 집사가 밤에 찾아 들어와서 “목사님, 왜 이러십니까.” 하고 위로했다. 나는 혼자 있게 가만 두어 달라고 했다. ‘하나님, 이제는 이 거짓된 일을 더는 할 수 없습니다. 내게 어떤 능력을 주시든지 아니면 다른 일을 주시든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내 생 명을 제발 거두어 주십시오.’ 라고 탄원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었다. 그 다음부 터는 설교하는 것이 두렵고 설교 단상에 서면 천정에서 “네 이놈, 거짓말쟁이야.” 라고 꾸지람하 시는 것 같고 언제나 마음속에는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는 탄식 소리뿐이었다.

그런 반면 인기는 점점 더 올라가서 목회자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시내에 큰 교회가 있 었는데 어떤 장로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그 교회의 적임자는 권 목사라는 말이 돌고 있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어도 강 건너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 같고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교회 제직회의 결의로 부흥회를 열기로 했다. 강사를 초빙하려고 하니 내 마음 상태가 곤고하여 웬만한 강사는 시시해서 청할 사람이 없었다. 특히 나는 신비주의가 싫었다.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는 것이 유행하여 여신도 중에서 주요 인물들이 거기 빠져 있었는데, 나는 그런 것들을 강조하는 강사는 아예 싫었다. 여자 권사나 집사들이 추천해 왔지만 다 거절했다. 내 마음에 그분 이면 좋겠다 생각했던 분이 한 분 있었는데, 당시 부산에 계신 김인서 장로(나중에 목사가 됨)였다. 성경을 바로 가르친다고 정평이 나 있는 분이었다. 그래서 그분께 편지를 내었다. 와서 집회를 좀 인도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사례금을 얼마 정해 주면 가겠다는 답장이 왔다. 솔직한 말이었으 나 당시 내 마음에는 그 말이 용납되지 않았다. 사례금을 미리 흥정하는 강사가 세상에 어디에 있 는가? 그는 영원히 강사로 모시지 않겠다고 거절해 버렸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누군가가 길기수(Keith Glas)라는 네덜란드 선교사를 소개했다. 한국어를 잘 하고 부흥회 인도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섭을 하여 집회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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