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신 찬

 
<목차>
주일학교 학생으로
어머니와의 사별
대동아 전쟁 발발
타향 길
해방의 기쁜 소식
10. 1 사태
신학생이 되기까지
신학교 생활에서 느낀 환멸
목회의 시작
나는 위선자였다
대구 칠성교회로
새로운 계기가 된 집회
드디어 진리를 발견하다

<국외의 다른 인물들>
- 어거스틴 (354 ~ 430)
- 존 위클리프 (1329 ~ 1384)
- 존 후스 (1369 ~ 1415)
- 마르틴 루터 (1483 ~ 1546)
- 울리히 츠빙글리 (1484 ~ 1531)
<국내의 다른 인물들>
- 권신찬

 
 
 
 

신학교 생활에서 느낀 환멸 (1)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신학교 생활이 시작되니 처음에는 하늘로 날듯이 기뻤다. 해방되었을 때의 기쁨보다 더한 기쁨이 있었다. 신학교는 남산 위의 옛날 신궁 자리 근처에 세워진 성도교회 자리였고 기숙사는 동국대학 뒤편에 있는 영락교회 김응락 장로의 집이었다. 수십 명이 숙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다다미방이었고 한편은 김 장로의 가정이 사는 큰 집이었다. 신학교와의 거리는 약 4킬로미터쯤 되는 상당히 먼 거리였으나 이를 멀다 하지 않고 매일 책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박형용 박사의 조직신학은 너무 어려운 말들로 되어 있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밖에 교수들의 종교철학이나 윤리학도 난해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했다. 실력 있는 학생들은 슬슬 놀면서 공부했으나 나 같은 독학생은 어려움이 많았고 따라서 주야로 공부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가 없었다. 어학 과정으로 헬라어, 히브리어, 영어 등을 이수해야 하는데 다른 필수 과목 때문에 영어 외에는 선택하지 않고 영어만 조금씩 공부했다. 그것도 중학 강의록에서 알파벳을 익힐 정도밖에 못해서 힘쓰지 않고, 전공과목인 신학 과목과 주경신학만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흥미가 있었던 과목은 변증학으로 항상 궁금했던 문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신의 존재를 변증법적인 논리로 입증하고 사실적인 입장에서 성경을 변증하는 과목들에서 숨통이 약간은 트이는 듯했다. 학기말 고사 때 음악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과목 학점이 중간 정도로 나왔고 어떤 과목은 상당히 성적이 잘 나왔다.

한 학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친이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얘야, 그래서는 공부를 할 수 없겠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몇 달 동안 살이 쭉 빠졌기 때문이다. 본래도 좀 깡마른 상태이나 한 끼에 한 공기씩 하루 두 끼를 먹고 지냈으니 살이 쭉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괜찮습니다. 넉넉히 견딜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학교 생활이 무척 즐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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